임청각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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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청각인물들
 
김우락(1854-1933)
김락의 언니이자 석주 이상룡의
부인. 남편을 따라 만주로 망명
할 때 처절한 심경을 읊은 만주망명가사 '간운사'


​​​​ 김우락金宇洛(1854~1933)은 1854년 아버지 김진린과 어머니 함양박씨의 4남 3녀 가운데 넷째로 태어났다. 큰 오빠는 김대락이며, 막내 여동생이 김락이다. 출생지는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내앞마을)이다. 그녀는 성장하여 석주 이상룡의 부인이 되었다. 1875년 9월 아들 이준형이 태어났고, 이때 그녀는 만 21살이었다. 이를 통해 그녀의 결혼시기를 가늠해 볼 수 있다.

김우락은 1911년 57세의 나이로 남편을 따라 만주로 망명하였다. 그녀의 만주생활은 고난과 슬픔의 연속이었다. 어린 손녀와 손자를 잃었고, 1915년에는 오빠 김대락도 생을 마감하였다. 어려움의 연속이었지만 그녀는 희망을 잃지 않으려고 자신을 다잡았다. 그러다가 1922년 그녀는 손부 허은許銀(1907~1997)을 맞아, 그 무거운 짐을 조금 덜어냈다.

 

김우락의 가사 <간운사>

그녀가 남긴 가사 <간운사> 에는 망명길에 오른 심정이 잘 드러나 있다.

<간운사>는 김우락이 1914년 무렵 고국의 형제자매를 그리워하며 지은 가사이다. <간운사>내용을 보면, 첫 부분은 1911년 만주망명 사실을 회고한 글이다. 둘째 부분은 만주생활을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먹고 사는 것에 비유하면서 희망을 잃지 않고 살겠노라고 다짐하였다. 세 번째 부분은 자신이 남자라면 세계 곳곳을 두루 돌아다니며 천하 사업을 다하고, 독립운동에 힘을 보탰겠지만 쓸모없는 여자임을 애달파하였다. 그 당시 관습에 따라 남성과 여성의 차별이 심해서 자신의 뜻을 펼쳐내지 못한 안타까운 마음을 피력하고 있다. 여성으로 태어난 생물학적 조건의 한계를 매우 가슴 아파하지 않았을까 하고 헤아려 본다.

 

석주 이상룡이 1932년 5월에 순국하자 김우락, 이중숙, 허은 세 분 모두 귀국한다. 일제의 감시를 피하느라 밤에 주로 움직였다. 김우락은 습종(濕腫)에 걸려 손자에게 업혀오게 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추운 곳에 몸이 적응하지 못해 몸이 붓고 종기도 나고 했던 모양이다. 이렇게 고생을 한 몸이다 보니 귀국하고 1년을 넘기지 못하고 1933년 4월 79세 일기로 생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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